고전적 공리주의자 벤담과 밀은 행복은 곧 쾌락이고 불행은 고통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인간 행위의 목적을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늘리는 것에 두었다. 특히 이들이 중시한 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었는데 여기에서 공공선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편, 20세기 사상가 칼 포퍼는 불행의 최소화를 중시하며 ㉠‘소극적 공리주의’를 제시했다.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 그는 공공의 영역을 인정하되 최대 행복을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 받는 일을 경계했다. 세계사적 비극인 전체주의의 폐해를 떠올리면 그의 우려가 지나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전적 공리주의가 행복을 극대화하려 한다면, 소극적 공리주의는 행복이 아닌 불행을, 쾌락이 아닌 고통을, 선이 아닌 악을 제거하고 최소화하려 한다. 소극적 공리주의에 따르면, 행복이나 선이라는 목표는 항상 미래에 오는 것이므로 불확실하며 대체로 추상적이다. 반면에 고통이나 악을 제거한다고 할 때, 그 고통이나 악은 항상 현재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의 추상적인 선을 추구하기보다는 확실한 현재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행복이나 선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것인 경우가 많아서 일률적으로 산출하기 어렵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사람들 간에 의견 일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고통이나 악은 사람들이 쉽게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 소극적 공리주의의 주장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각각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배고픔의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 의견 일치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를 평가할 때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적 지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만으로 국민의 행복과 불행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국가 행복지수는 국내총생산뿐만 아니라 건강상태, 자유, 기대수명, 부정부패 등을 바탕으로 집계된다. 국민소득이 2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고 가난한 나라지만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하는 부탄이 널리 알려진 것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나라의 국민이지만 한국인의 불행이 주목받게 된 것도 국가 행복지수 때문이다. 2018-2020년 평균을 산출한 결과 한국은 국가 행복지수 10점 만점에 5.85점으로 OECD 회원국 중 거의 끝자리를 차지했는데, 미세먼지 농도는 가장 높았고, 연간 근로시간은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길었다. 또한 2020년 유니세프가 발표한 어린이 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OECD 및 EU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21위였다. 신체건강(13위), 학업 및 사회 능력(11위)은 상위권이었지만 정신적 행복은 34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나는 이사하기를 좋아한다. 인간이라는 것은 크게 나누면 대충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이사하기를 좋아하는 인간과 싫어하는 인간이다. 특별히 전자는 행동적이고 진취성이 풍부하나 후자는 그 반대라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히 이사하기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라는 극히 단순한 차원의 이야기이다. 짐을 챙겨 동네에서 동네로, 집에서 집으로 옮겨 다니노라면, 정말로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적극적인 인간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생활 습관을 바꾸거나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을 바꾸거나 하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편이다. 양복만 해도 15년 전과 거의 같은 것을 입고 있다. 하지만 이사 가는 것만은 좋아한다. 이사의 좋은 점은 모든 것을 '무(無)'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웃과의 교제, 인간관계, 그 밖의 온갖 일상생활에서의 자질구레한 일, 그러한 것이 전부 한순간에 소멸해버리는 것이다. 이 쾌감은 한 번 맛보면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다. 야반도주야말로 이사의 기본적 원형이다. 나는 지금까지 굉장히 여러 번 이사를 하고, 여러 곳에 살았으며,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상종을 해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모든 것을 '무'로 만들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고전적 공리주의자 벤담과 밀은 행복은 곧 쾌락이고 불행은 고통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인간 행위의 목적을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늘리는 것에 두었다. 특히 이들이 중시한 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었는데 여기에서 공공선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편, 20세기 사상가 칼 포퍼는 불행의 최소화를 중시하며 ㉠‘소극적 공리주의’를 제시했다.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 그는 공공의 영역을 인정하되 최대 행복을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 받는 일을 경계했다. 세계사적 비극인 전체주의의 폐해를 떠올리면 그의 우려가 지나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전적 공리주의가 행복을 극대화하려 한다면, 소극적 공리주의는 행복이 아닌 불행을, 쾌락이 아닌 고통을, 선이 아닌 악을 제거하고 최소화하려 한다. 소극적 공리주의에 따르면, 행복이나 선이라는 목표는 항상 미래에 오는 것이므로 불확실하며 대체로 추상적이다. 반면에 고통이나 악을 제거한다고 할 때, 그 고통이나 악은 항상 현재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의 추상적인 선을 추구하기보다는 확실한 현재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행복이나 선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것인 경우가 많아서 일률적으로 산출하기 어렵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사람들 간에 의견 일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고통이나 악은 사람들이 쉽게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 소극적 공리주의의 주장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각각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배고픔의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 의견 일치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를 평가할 때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적 지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만으로 국민의 행복과 불행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국가 행복지수는 국내총생산뿐만 아니라 건강상태, 자유, 기대수명, 부정부패 등을 바탕으로 집계된다. 국민소득이 2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고 가난한 나라지만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하는 부탄이 널리 알려진 것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나라의 국민이지만 한국인의 불행이 주목받게 된 것도 국가 행복지수 때문이다. 2018-2020년 평균을 산출한 결과 한국은 국가 행복지수 10점 만점에 5.85점으로 OECD 회원국 중 거의 끝자리를 차지했는데, 미세먼지 농도는 가장 높았고, 연간 근로시간은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길었다. 또한 2020년 유니세프가 발표한 어린이 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OECD 및 EU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21위였다. 신체건강(13위), 학업 및 사회 능력(11위)은 상위권이었지만 정신적 행복은 34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나는 이사하기를 좋아한다. 인간이라는 것은 크게 나누면 대충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이사하기를 좋아하는 인간과 싫어하는 인간이다. 특별히 전자는 행동적이고 진취성이 풍부하나 후자는 그 반대라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히 이사하기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라는 극히 단순한 차원의 이야기이다. 짐을 챙겨 동네에서 동네로, 집에서 집으로 옮겨 다니노라면, 정말로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적극적인 인간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생활 습관을 바꾸거나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을 바꾸거나 하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편이다. 양복만 해도 15년 전과 거의 같은 것을 입고 있다. 하지만 이사 가는 것만은 좋아한다. 이사의 좋은 점은 모든 것을 '무(無)'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웃과의 교제, 인간관계, 그 밖의 온갖 일상생활에서의 자질구레한 일, 그러한 것이 전부 한순간에 소멸해버리는 것이다. 이 쾌감은 한 번 맛보면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다. 야반도주야말로 이사의 기본적 원형이다. 나는 지금까지 굉장히 여러 번 이사를 하고, 여러 곳에 살았으며,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상종을 해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모든 것을 '무'로 만들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고전적 공리주의자 벤담과 밀은 행복은 곧 쾌락이고 불행은 고통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인간 행위의 목적을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늘리는 것에 두었다. 특히 이들이 중시한 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었는데 여기에서 공공선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편, 20세기 사상가 칼 포퍼는 불행의 최소화를 중시하며 ㉠‘소극적 공리주의’를 제시했다.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 그는 공공의 영역을 인정하되 최대 행복을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 받는 일을 경계했다. 세계사적 비극인 전체주의의 폐해를 떠올리면 그의 우려가 지나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전적 공리주의가 행복을 극대화하려 한다면, 소극적 공리주의는 행복이 아닌 불행을, 쾌락이 아닌 고통을, 선이 아닌 악을 제거하고 최소화하려 한다. 소극적 공리주의에 따르면, 행복이나 선이라는 목표는 항상 미래에 오는 것이므로 불확실하며 대체로 추상적이다. 반면에 고통이나 악을 제거한다고 할 때, 그 고통이나 악은 항상 현재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의 추상적인 선을 추구하기보다는 확실한 현재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행복이나 선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것인 경우가 많아서 일률적으로 산출하기 어렵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사람들 간에 의견 일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고통이나 악은 사람들이 쉽게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 소극적 공리주의의 주장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각각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배고픔의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 의견 일치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를 평가할 때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적 지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만으로 국민의 행복과 불행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국가 행복지수는 국내총생산뿐만 아니라 건강상태, 자유, 기대수명, 부정부패 등을 바탕으로 집계된다. 국민소득이 2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고 가난한 나라지만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하는 부탄이 널리 알려진 것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나라의 국민이지만 한국인의 불행이 주목받게 된 것도 국가 행복지수 때문이다. 2018-2020년 평균을 산출한 결과 한국은 국가 행복지수 10점 만점에 5.85점으로 OECD 회원국 중 거의 끝자리를 차지했는데, 미세먼지 농도는 가장 높았고, 연간 근로시간은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길었다. 또한 2020년 유니세프가 발표한 어린이 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OECD 및 EU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21위였다. 신체건강(13위), 학업 및 사회 능력(11위)은 상위권이었지만 정신적 행복은 34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나는 이사하기를 좋아한다. 인간이라는 것은 크게 나누면 대충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이사하기를 좋아하는 인간과 싫어하는 인간이다. 특별히 전자는 행동적이고 진취성이 풍부하나 후자는 그 반대라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히 이사하기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라는 극히 단순한 차원의 이야기이다. 짐을 챙겨 동네에서 동네로, 집에서 집으로 옮겨 다니노라면, 정말로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적극적인 인간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생활 습관을 바꾸거나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을 바꾸거나 하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편이다. 양복만 해도 15년 전과 거의 같은 것을 입고 있다. 하지만 이사 가는 것만은 좋아한다. 이사의 좋은 점은 모든 것을 '무(無)'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웃과의 교제, 인간관계, 그 밖의 온갖 일상생활에서의 자질구레한 일, 그러한 것이 전부 한순간에 소멸해버리는 것이다. 이 쾌감은 한 번 맛보면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다. 야반도주야말로 이사의 기본적 원형이다. 나는 지금까지 굉장히 여러 번 이사를 하고, 여러 곳에 살았으며,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상종을 해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모든 것을 '무'로 만들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과 ㉢을 각각 소개만 하면 평가가 아닙니다. ㉠의 특성(불행의 최소화, 행복의 산출 불가능성, 사회적 관계·공공 영역을 인정)을 기준으로 세워 ㉡은 행복·불행의 측정 가능성을 중시하는 점에서, ㉢은 사회관계를 끊는 개인 쾌락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다른지 평가해야 합니다.
고전적 공리주의자 벤담과 밀은 행복은 곧 쾌락이고 불행은 고통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인간 행위의 목적을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늘리는 것에 두었다. 특히 이들이 중시한 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었는데 여기에서 공공선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편, 20세기 사상가 칼 포퍼는 불행의 최소화를 중시하며 ㉠‘소극적 공리주의’를 제시했다.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 그는 공공의 영역을 인정하되 최대 행복을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 받는 일을 경계했다. 세계사적 비극인 전체주의의 폐해를 떠올리면 그의 우려가 지나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전적 공리주의가 행복을 극대화하려 한다면, 소극적 공리주의는 행복이 아닌 불행을, 쾌락이 아닌 고통을, 선이 아닌 악을 제거하고 최소화하려 한다. 소극적 공리주의에 따르면, 행복이나 선이라는 목표는 항상 미래에 오는 것이므로 불확실하며 대체로 추상적이다. 반면에 고통이나 악을 제거한다고 할 때, 그 고통이나 악은 항상 현재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의 추상적인 선을 추구하기보다는 확실한 현재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행복이나 선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것인 경우가 많아서 일률적으로 산출하기 어렵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사람들 간에 의견 일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고통이나 악은 사람들이 쉽게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 소극적 공리주의의 주장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각각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배고픔의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 의견 일치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를 평가할 때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적 지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만으로 국민의 행복과 불행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국가 행복지수는 국내총생산뿐만 아니라 건강상태, 자유, 기대수명, 부정부패 등을 바탕으로 집계된다. 국민소득이 2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고 가난한 나라지만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하는 부탄이 널리 알려진 것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나라의 국민이지만 한국인의 불행이 주목받게 된 것도 국가 행복지수 때문이다. 2018-2020년 평균을 산출한 결과 한국은 국가 행복지수 10점 만점에 5.85점으로 OECD 회원국 중 거의 끝자리를 차지했는데, 미세먼지 농도는 가장 높았고, 연간 근로시간은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길었다. 또한 2020년 유니세프가 발표한 어린이 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OECD 및 EU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21위였다. 신체건강(13위), 학업 및 사회 능력(11위)은 상위권이었지만 정신적 행복은 34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을 비판한다고 하면서 감정적으로 반대만 하면 안 됩니다. (나)의 지수는 행복과 불행의 요소를 모두 넣어 같은 층위에서 산출하므로 행복도 현재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점으로, ㉠의 '행복은 미래적·추상적이라 산출 불가능' 전제를 비판해야 합니다.
고전적 공리주의자 벤담과 밀은 행복은 곧 쾌락이고 불행은 고통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인간 행위의 목적을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늘리는 것에 두었다. 특히 이들이 중시한 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었는데 여기에서 공공선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편, 20세기 사상가 칼 포퍼는 불행의 최소화를 중시하며 ㉠‘소극적 공리주의’를 제시했다.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 그는 공공의 영역을 인정하되 최대 행복을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 받는 일을 경계했다. 세계사적 비극인 전체주의의 폐해를 떠올리면 그의 우려가 지나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전적 공리주의가 행복을 극대화하려 한다면, 소극적 공리주의는 행복이 아닌 불행을, 쾌락이 아닌 고통을, 선이 아닌 악을 제거하고 최소화하려 한다. 소극적 공리주의에 따르면, 행복이나 선이라는 목표는 항상 미래에 오는 것이므로 불확실하며 대체로 추상적이다. 반면에 고통이나 악을 제거한다고 할 때, 그 고통이나 악은 항상 현재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의 추상적인 선을 추구하기보다는 확실한 현재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행복이나 선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것인 경우가 많아서 일률적으로 산출하기 어렵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사람들 간에 의견 일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고통이나 악은 사람들이 쉽게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 소극적 공리주의의 주장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각각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배고픔의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 의견 일치를 볼 수 있다.
정책만 말하면 반쪽입니다. 그 정책이 합의하기 쉬운 고통을 줄인다는 점(소극적 공리주의), 순기능(사회적 고통 최소화)과 역기능(근로 의욕 저하, 도덕적 해이, 선택권 억압, 비용 증가)을 모두 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