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으로 대표되는 기술발전으로 인해 전통적인 고용 구조가 재편되고 소득 격차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로봇이 대신하여 우리 사회는 심각한 일자리 부족과 임금 하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로봇은 본질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켜 실질 소득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나, 이러한 소득 증가는 일부 상위 계층에게만 편중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곤에 더 취약해질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시민의 존엄성, 안전, 기회를 보장하는 하나의 재분배 전략이 된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수준의 현금성 소득을 제공함으로써 빈곤 예방, 인적자본 축적, 아동과 가족의 복지 향상, 사회적 연대 증진을 가능하게 한다. 재교육을 위해 수입을 포기할 수 없는 중견 근로자에게 특히 큰 교육 투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인적자본의 축적은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인간의 자유 증진에도 기여한다. 선별적 재분배 전략은 빈곤을 증명해야만 혜택이 주어지므로 빈곤에 대한 비하의 시선과 낙인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혁신적 전략은 경제적 회복력을 키우고, 사회경제적 계층 간의 격차를 줄이며, 개인의 주체성과 사회적 결속력이 번성하는 사회를 조성하여 모두에게 보다 공평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모든 빈궁은 사실상 어느 정도는 도덕적 범죄이며, 빈궁이라는 결과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빈궁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하며, 빈궁에서 벗어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국가의 원조를 받는 빈궁한 가족의 생활은 최소한의 신체적 생존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하며, 지원받지 않는 독립근로자들보다 매력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신문을 구독하거나 콘서트 티켓을 사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인형, 구슬, 과자를 사서는 안 되고, 아버지는 흡연과 술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이나 자녀를 위해 예쁜 옷을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하며, 필수적인 물품 이외에는 구입을 자제해야 합니다. 교회나 예배당에 헌금을 드리거나 이웃을 도와주는 것도 이들에게는 사치입니다. 관대한 지원은 이들을 빈궁한 현실에 안주하게 하며, 일할 의욕마저 상실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빈궁이 대물림 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부담만 가중될 뿐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은 여가 시간을 줄여 돈을 버는 활동을 기꺼이 할 수 있다. 반면 그런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여가 시간에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세금 제도로 빈곤층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누군가의 여가를 압수하는 것이 부당한 일이라 한다면, 같은 목적으로 누군가가 번 돈을 압수하는 것을 합당하다 할 수 있을까?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표를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노을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여가 시간에 노을을 즐기면 된다. 그렇다고 하여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자기가 번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고, 노을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의무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재분배론자들의 논의는 추가적인 노동 없이도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쾌락을 위해 더 일하고 그에 따라 돈을 더 버는 사람들에게만 또 다른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어째서 비물질적이거나 비소비적 욕망을 추구하는 일은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아도 되는 반면, 자신의 욕망이 물질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어 더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제약을 받아야 하는가? 이런 제약은 더 일하여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의 노동 의욕을 감소시키지 않을까?
국민의 소득수준에 따른 복지 혜택 정책을 아래 [그림 1]에 따라 운영해온 국가가 있다. 이 나라 국민은 소득이 없더라도 수준 G의 복지 혜택을 보장받으며, 이 혜택은 소득수준 30% 선까지 계속 증가한 후 최대 수준 M을 유지하다가 소득 백분위*가 P를 넘으면 감소하여 최상위소득자에 이르러서는 복지 혜택이 없다. 이 국가는 최대 수준 M은 고정시키고 국가가 처한 여건에 따라 G를 조정해 왔는데, G를 G′처럼 높이는 데 따른 추가 재정부담은 P를 P′로 당겨서 마련해 왔다. [그림 2]는 이러한 복지정책을 오랜 기간 운영하면서 G값에 따라 소득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노동 의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한 결과이다. 하위 계층은 소득 하위 30%에 속하는 국민을, 상위 계층은 소득 백분위가 P를 넘는 국민을 의미한다.
* 소득 백분위: 가장 낮은 소득부터 정렬하여 최고 소득을 100%라고 했을 때의 순윗값. 예를 들어 소득 백분위 30은 최저 소득에서부터 30%에 위치한 국민의 순윗값을 의미함.
※ 원문 그림을 글로 옮긴 설명입니다(원본은 대학 공개 문항).
[그림 1] 가로축 소득백분위(0~100, 30·P′·P 표시), 세로축 복지 혜택(G·G′·최대 수준 M). 실선: 소득이 0일 때 G에서 시작해 30까지 증가해 M에 이르고, P까지 M을 유지한 뒤 100에서 0으로 감소. 점선: 시작점이 G′로 높아지고, P′에서부터 감소가 시작되어 100에서 0이 됨.
[그림 2] 가로축 G(0에서 최대 수준 M까지), 세로축 노동 의욕. 실선(하위 계층): G가 커질수록 노동 의욕이 증가하다가 가로축 3분의 2 부근을 지나면 감소. 일점쇄선(상위 계층): 높은 수준으로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다가 최대 수준 M 부근에서 급격히 감소.
[나]와 [다]는 "재분배가 노동 의욕을 해친다"는 같은 우려를 서로 다른 쪽(받는 사람·내는 사람)에서 말합니다. [라]의 [그림 2]가 바로 이 우려를 시험합니다.
로봇으로 대표되는 기술발전으로 인해 전통적인 고용 구조가 재편되고 소득 격차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로봇이 대신하여 우리 사회는 심각한 일자리 부족과 임금 하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로봇은 본질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켜 실질 소득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나, 이러한 소득 증가는 일부 상위 계층에게만 편중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곤에 더 취약해질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시민의 존엄성, 안전, 기회를 보장하는 하나의 재분배 전략이 된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수준의 현금성 소득을 제공함으로써 빈곤 예방, 인적자본 축적, 아동과 가족의 복지 향상, 사회적 연대 증진을 가능하게 한다. 재교육을 위해 수입을 포기할 수 없는 중견 근로자에게 특히 큰 교육 투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인적자본의 축적은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인간의 자유 증진에도 기여한다. 선별적 재분배 전략은 빈곤을 증명해야만 혜택이 주어지므로 빈곤에 대한 비하의 시선과 낙인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혁신적 전략은 경제적 회복력을 키우고, 사회경제적 계층 간의 격차를 줄이며, 개인의 주체성과 사회적 결속력이 번성하는 사회를 조성하여 모두에게 보다 공평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모든 빈궁은 사실상 어느 정도는 도덕적 범죄이며, 빈궁이라는 결과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빈궁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하며, 빈궁에서 벗어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국가의 원조를 받는 빈궁한 가족의 생활은 최소한의 신체적 생존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하며, 지원받지 않는 독립근로자들보다 매력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신문을 구독하거나 콘서트 티켓을 사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인형, 구슬, 과자를 사서는 안 되고, 아버지는 흡연과 술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이나 자녀를 위해 예쁜 옷을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하며, 필수적인 물품 이외에는 구입을 자제해야 합니다. 교회나 예배당에 헌금을 드리거나 이웃을 도와주는 것도 이들에게는 사치입니다. 관대한 지원은 이들을 빈궁한 현실에 안주하게 하며, 일할 의욕마저 상실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빈궁이 대물림 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부담만 가중될 뿐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은 여가 시간을 줄여 돈을 버는 활동을 기꺼이 할 수 있다. 반면 그런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여가 시간에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세금 제도로 빈곤층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누군가의 여가를 압수하는 것이 부당한 일이라 한다면, 같은 목적으로 누군가가 번 돈을 압수하는 것을 합당하다 할 수 있을까?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표를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노을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여가 시간에 노을을 즐기면 된다. 그렇다고 하여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자기가 번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고, 노을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의무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재분배론자들의 논의는 추가적인 노동 없이도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쾌락을 위해 더 일하고 그에 따라 돈을 더 버는 사람들에게만 또 다른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어째서 비물질적이거나 비소비적 욕망을 추구하는 일은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아도 되는 반면, 자신의 욕망이 물질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어 더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제약을 받아야 하는가? 이런 제약은 더 일하여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의 노동 의욕을 감소시키지 않을까?
국민의 소득수준에 따른 복지 혜택 정책을 아래 [그림 1]에 따라 운영해온 국가가 있다. 이 나라 국민은 소득이 없더라도 수준 G의 복지 혜택을 보장받으며, 이 혜택은 소득수준 30% 선까지 계속 증가한 후 최대 수준 M을 유지하다가 소득 백분위*가 P를 넘으면 감소하여 최상위소득자에 이르러서는 복지 혜택이 없다. 이 국가는 최대 수준 M은 고정시키고 국가가 처한 여건에 따라 G를 조정해 왔는데, G를 G′처럼 높이는 데 따른 추가 재정부담은 P를 P′로 당겨서 마련해 왔다. [그림 2]는 이러한 복지정책을 오랜 기간 운영하면서 G값에 따라 소득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노동 의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한 결과이다. 하위 계층은 소득 하위 30%에 속하는 국민을, 상위 계층은 소득 백분위가 P를 넘는 국민을 의미한다.
* 소득 백분위: 가장 낮은 소득부터 정렬하여 최고 소득을 100%라고 했을 때의 순윗값. 예를 들어 소득 백분위 30은 최저 소득에서부터 30%에 위치한 국민의 순윗값을 의미함.
※ 원문 그림을 글로 옮긴 설명입니다(원본은 대학 공개 문항).
[그림 1] 가로축 소득백분위(0~100, 30·P′·P 표시), 세로축 복지 혜택(G·G′·최대 수준 M). 실선: 소득이 0일 때 G에서 시작해 30까지 증가해 M에 이르고, P까지 M을 유지한 뒤 100에서 0으로 감소. 점선: 시작점이 G′로 높아지고, P′에서부터 감소가 시작되어 100에서 0이 됨.
[그림 2] 가로축 G(0에서 최대 수준 M까지), 세로축 노동 의욕. 실선(하위 계층): G가 커질수록 노동 의욕이 증가하다가 가로축 3분의 2 부근을 지나면 감소. 일점쇄선(상위 계층): 높은 수준으로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다가 최대 수준 M 부근에서 급격히 감소.
로봇으로 대표되는 기술발전으로 인해 전통적인 고용 구조가 재편되고 소득 격차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로봇이 대신하여 우리 사회는 심각한 일자리 부족과 임금 하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로봇은 본질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켜 실질 소득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나, 이러한 소득 증가는 일부 상위 계층에게만 편중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곤에 더 취약해질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시민의 존엄성, 안전, 기회를 보장하는 하나의 재분배 전략이 된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수준의 현금성 소득을 제공함으로써 빈곤 예방, 인적자본 축적, 아동과 가족의 복지 향상, 사회적 연대 증진을 가능하게 한다. 재교육을 위해 수입을 포기할 수 없는 중견 근로자에게 특히 큰 교육 투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인적자본의 축적은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인간의 자유 증진에도 기여한다. 선별적 재분배 전략은 빈곤을 증명해야만 혜택이 주어지므로 빈곤에 대한 비하의 시선과 낙인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혁신적 전략은 경제적 회복력을 키우고, 사회경제적 계층 간의 격차를 줄이며, 개인의 주체성과 사회적 결속력이 번성하는 사회를 조성하여 모두에게 보다 공평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모든 빈궁은 사실상 어느 정도는 도덕적 범죄이며, 빈궁이라는 결과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빈궁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하며, 빈궁에서 벗어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국가의 원조를 받는 빈궁한 가족의 생활은 최소한의 신체적 생존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하며, 지원받지 않는 독립근로자들보다 매력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신문을 구독하거나 콘서트 티켓을 사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인형, 구슬, 과자를 사서는 안 되고, 아버지는 흡연과 술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이나 자녀를 위해 예쁜 옷을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하며, 필수적인 물품 이외에는 구입을 자제해야 합니다. 교회나 예배당에 헌금을 드리거나 이웃을 도와주는 것도 이들에게는 사치입니다. 관대한 지원은 이들을 빈궁한 현실에 안주하게 하며, 일할 의욕마저 상실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빈궁이 대물림 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부담만 가중될 뿐입니다.
(가)와 (나)를 따로 요약하고 끝내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원인과 해결 방법 두 축을 먼저 세운 뒤 (가)↔(나)를 같은 줄에서 맞대야 합니다. 대학 해설은 (나)의 최소 지원이 (가)가 말하는 선별적 재분배와 닿는다는 점도 비교 포인트로 듭니다.
모든 빈궁은 사실상 어느 정도는 도덕적 범죄이며, 빈궁이라는 결과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빈궁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하며, 빈궁에서 벗어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국가의 원조를 받는 빈궁한 가족의 생활은 최소한의 신체적 생존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하며, 지원받지 않는 독립근로자들보다 매력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신문을 구독하거나 콘서트 티켓을 사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인형, 구슬, 과자를 사서는 안 되고, 아버지는 흡연과 술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이나 자녀를 위해 예쁜 옷을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하며, 필수적인 물품 이외에는 구입을 자제해야 합니다. 교회나 예배당에 헌금을 드리거나 이웃을 도와주는 것도 이들에게는 사치입니다. 관대한 지원은 이들을 빈궁한 현실에 안주하게 하며, 일할 의욕마저 상실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빈궁이 대물림 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부담만 가중될 뿐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은 여가 시간을 줄여 돈을 버는 활동을 기꺼이 할 수 있다. 반면 그런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여가 시간에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세금 제도로 빈곤층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누군가의 여가를 압수하는 것이 부당한 일이라 한다면, 같은 목적으로 누군가가 번 돈을 압수하는 것을 합당하다 할 수 있을까?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표를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노을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여가 시간에 노을을 즐기면 된다. 그렇다고 하여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자기가 번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고, 노을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의무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재분배론자들의 논의는 추가적인 노동 없이도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쾌락을 위해 더 일하고 그에 따라 돈을 더 버는 사람들에게만 또 다른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어째서 비물질적이거나 비소비적 욕망을 추구하는 일은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아도 되는 반면, 자신의 욕망이 물질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어 더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제약을 받아야 하는가? 이런 제약은 더 일하여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의 노동 의욕을 감소시키지 않을까?
국민의 소득수준에 따른 복지 혜택 정책을 아래 [그림 1]에 따라 운영해온 국가가 있다. 이 나라 국민은 소득이 없더라도 수준 G의 복지 혜택을 보장받으며, 이 혜택은 소득수준 30% 선까지 계속 증가한 후 최대 수준 M을 유지하다가 소득 백분위*가 P를 넘으면 감소하여 최상위소득자에 이르러서는 복지 혜택이 없다. 이 국가는 최대 수준 M은 고정시키고 국가가 처한 여건에 따라 G를 조정해 왔는데, G를 G′처럼 높이는 데 따른 추가 재정부담은 P를 P′로 당겨서 마련해 왔다. [그림 2]는 이러한 복지정책을 오랜 기간 운영하면서 G값에 따라 소득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노동 의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한 결과이다. 하위 계층은 소득 하위 30%에 속하는 국민을, 상위 계층은 소득 백분위가 P를 넘는 국민을 의미한다.
* 소득 백분위: 가장 낮은 소득부터 정렬하여 최고 소득을 100%라고 했을 때의 순윗값. 예를 들어 소득 백분위 30은 최저 소득에서부터 30%에 위치한 국민의 순윗값을 의미함.
[그림 2] 가로축 G, 세로축 노동 의욕. 실선(하위 계층)은 G가 커지면 증가하다 3분의 2 부근을 지나 감소. 일점쇄선(상위 계층)은 거의 일정하다가 M 부근에서 급감.
그래프를 설명한 뒤 곧바로 결론으로 가면 60점 구간에 못 닿습니다. 하위 계층 선은 (나), 상위 계층 선은 (다)에 각각 대응시켜 '어느 구간까지 맞고 어디서부터 맞는지'까지 평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