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관찰한 것을 살펴봄으로써 세상에 관한 사실들을 찾아낸다. 이 말이 당연한 것처럼 들리게 된 것은 지난 두 세기 동안 과학적 태도가 확산되어 왔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과거에는 이것이 그렇게 당연한 것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갈릴레오의 사례를 회상해 보기 바란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망원경을 사용하여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들을 보았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당시의 학자들은 단지 일곱 개의 천체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다섯 개의 행성, 태양, 그리고 달). 그 당시에는 순수한 사색이나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지식을 가장 잘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대의 몇몇 학자들은 갈릴레오의 망원경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하였다. 다른 학자들은 그의 망원경이 사기를 치도록 고안되었다고 말하였다. 또 다른 학자들은 그 망원경이 땅에서는 작동하지만 하늘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과학이 관찰과 실험에서 출발하므로 객관적인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까마귀를 보면 누구나 검다고 생각하고 물이 100℃에서 끓는 것은 누구에게나 관찰되므로, 그것에 근거한 법칙은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찰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객관적이지 않고 이론 의존적이다. 옆 그림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토끼로 보이기도 하고 오리로 보이기도 한다. 토끼라고 생각한 사람도 오리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면 오리로 보이고, 거꾸로 오리라고 생각한 사람도 토끼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면 토끼로 보인다. 그래서 철학자 러셀 핸슨은 “본다는 것은 우리의 망막에 맺히는 것 이상이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가 얼마만큼 알고 있고 무엇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이런 간단한 그림도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 [나]의 '옆 그림'은 토끼로도 오리로도 보이는 하나의 그림입니다(원문 그림을 글로 옮김).
멘델은 오늘날 ‘유전자’라고 부르는 존재를 처음 알아냈다. 완두의 유전에 대한 분석으로 그는 우성 형질과 열성 형질을 식별하고, 그 형질이 자손들에게 나타나는 비율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거듭된 실험을 통해서 얻은 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20세기에 들어서 멘델에게 유전 과학의 창시자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의 데이터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기 때문에 저명한 통계학자 로널드 피셔는 1936년에 멘델의 방법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 결과는 너무나 놀라웠다. 피셔는 힘겨운 연구 이외에 무언가가 개입된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실험 데이터 대부분이 멘델의 예상과 거의 일치하도록 조작되었다”라고 피셔는 썼다. 훗날의 유전학자들은 멘델이 최고의 사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데이터를 선별한 것이 분명하다고 보았다. “어쩌면 그는 완두콩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자신이 도달했던 유전에 관한 특정 관점에서 법칙들을 연역해냈을지도 모른다.”
사실 저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에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반대해왔으며, 과학조차도 그러한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역사, 그리고 모든 인간 사상의 역사는 무책임한 꿈, 고집, 그리고 오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과학은 오류가 체계적으로 비판되고 시정되는 유일한 인간 활동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과학에서는 우리가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고, 명확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보를 논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다른 분야에서는 변화가 있어도 진보는 드뭅니다. 거의 모든 이득은 손실로 상쇄되거나, 때로 이득보다 큰 손실이 생깁니다. 대부분의 다른 분야에서는 변화의 평가 방법조차 모릅니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진보의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과학 이론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이론보다 나은 것인지 말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관찰한 것을 살펴봄으로써 세상에 관한 사실들을 찾아낸다. 이 말이 당연한 것처럼 들리게 된 것은 지난 두 세기 동안 과학적 태도가 확산되어 왔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과거에는 이것이 그렇게 당연한 것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갈릴레오의 사례를 회상해 보기 바란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망원경을 사용하여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들을 보았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당시의 학자들은 단지 일곱 개의 천체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다섯 개의 행성, 태양, 그리고 달). 그 당시에는 순수한 사색이나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지식을 가장 잘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대의 몇몇 학자들은 갈릴레오의 망원경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하였다. 다른 학자들은 그의 망원경이 사기를 치도록 고안되었다고 말하였다. 또 다른 학자들은 그 망원경이 땅에서는 작동하지만 하늘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과학이 관찰과 실험에서 출발하므로 객관적인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까마귀를 보면 누구나 검다고 생각하고 물이 100℃에서 끓는 것은 누구에게나 관찰되므로, 그것에 근거한 법칙은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찰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객관적이지 않고 이론 의존적이다. 옆 그림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토끼로 보이기도 하고 오리로 보이기도 한다. 토끼라고 생각한 사람도 오리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면 오리로 보이고, 거꾸로 오리라고 생각한 사람도 토끼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면 토끼로 보인다. 그래서 철학자 러셀 핸슨은 “본다는 것은 우리의 망막에 맺히는 것 이상이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가 얼마만큼 알고 있고 무엇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이런 간단한 그림도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 [나]의 '옆 그림'은 토끼로도 오리로도 보이는 하나의 그림입니다(원문 그림을 글로 옮김).
멘델은 오늘날 ‘유전자’라고 부르는 존재를 처음 알아냈다. 완두의 유전에 대한 분석으로 그는 우성 형질과 열성 형질을 식별하고, 그 형질이 자손들에게 나타나는 비율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거듭된 실험을 통해서 얻은 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20세기에 들어서 멘델에게 유전 과학의 창시자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의 데이터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기 때문에 저명한 통계학자 로널드 피셔는 1936년에 멘델의 방법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 결과는 너무나 놀라웠다. 피셔는 힘겨운 연구 이외에 무언가가 개입된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실험 데이터 대부분이 멘델의 예상과 거의 일치하도록 조작되었다”라고 피셔는 썼다. 훗날의 유전학자들은 멘델이 최고의 사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데이터를 선별한 것이 분명하다고 보았다. “어쩌면 그는 완두콩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자신이 도달했던 유전에 관한 특정 관점에서 법칙들을 연역해냈을지도 모른다.”
사실 저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에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반대해왔으며, 과학조차도 그러한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역사, 그리고 모든 인간 사상의 역사는 무책임한 꿈, 고집, 그리고 오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과학은 오류가 체계적으로 비판되고 시정되는 유일한 인간 활동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과학에서는 우리가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고, 명확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보를 논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다른 분야에서는 변화가 있어도 진보는 드뭅니다. 거의 모든 이득은 손실로 상쇄되거나, 때로 이득보다 큰 손실이 생깁니다. 대부분의 다른 분야에서는 변화의 평가 방법조차 모릅니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진보의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과학 이론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이론보다 나은 것인지 말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관찰한 것을 살펴봄으로써 세상에 관한 사실들을 찾아낸다. 이 말이 당연한 것처럼 들리게 된 것은 지난 두 세기 동안 과학적 태도가 확산되어 왔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과거에는 이것이 그렇게 당연한 것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갈릴레오의 사례를 회상해 보기 바란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망원경을 사용하여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들을 보았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당시의 학자들은 단지 일곱 개의 천체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다섯 개의 행성, 태양, 그리고 달). 그 당시에는 순수한 사색이나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지식을 가장 잘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대의 몇몇 학자들은 갈릴레오의 망원경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하였다. 다른 학자들은 그의 망원경이 사기를 치도록 고안되었다고 말하였다. 또 다른 학자들은 그 망원경이 땅에서는 작동하지만 하늘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과학이 관찰과 실험에서 출발하므로 객관적인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까마귀를 보면 누구나 검다고 생각하고 물이 100℃에서 끓는 것은 누구에게나 관찰되므로, 그것에 근거한 법칙은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찰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객관적이지 않고 이론 의존적이다. 옆 그림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토끼로 보이기도 하고 오리로 보이기도 한다. 토끼라고 생각한 사람도 오리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면 오리로 보이고, 거꾸로 오리라고 생각한 사람도 토끼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면 토끼로 보인다. 그래서 철학자 러셀 핸슨은 “본다는 것은 우리의 망막에 맺히는 것 이상이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가 얼마만큼 알고 있고 무엇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이런 간단한 그림도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멘델은 오늘날 ‘유전자’라고 부르는 존재를 처음 알아냈다. 완두의 유전에 대한 분석으로 그는 우성 형질과 열성 형질을 식별하고, 그 형질이 자손들에게 나타나는 비율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거듭된 실험을 통해서 얻은 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20세기에 들어서 멘델에게 유전 과학의 창시자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의 데이터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기 때문에 저명한 통계학자 로널드 피셔는 1936년에 멘델의 방법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 결과는 너무나 놀라웠다. 피셔는 힘겨운 연구 이외에 무언가가 개입된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실험 데이터 대부분이 멘델의 예상과 거의 일치하도록 조작되었다”라고 피셔는 썼다. 훗날의 유전학자들은 멘델이 최고의 사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데이터를 선별한 것이 분명하다고 보았다. “어쩌면 그는 완두콩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자신이 도달했던 유전에 관한 특정 관점에서 법칙들을 연역해냈을지도 모른다.”
[가]와 [다]를 각각 요약만 하면 '[나]의 관점'이 빠집니다. [나]의 핵심(관찰은 이론 의존적)을 먼저 세우고 두 사례에 대입해야 비교가 됩니다. 또 [가]를 '관찰 만능'으로만 읽지 말고 거부한 학자들의 믿음이 관찰에 영향을 준 사례로도 읽어야 합니다.
멘델은 오늘날 ‘유전자’라고 부르는 존재를 처음 알아냈다. 완두의 유전에 대한 분석으로 그는 우성 형질과 열성 형질을 식별하고, 그 형질이 자손들에게 나타나는 비율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거듭된 실험을 통해서 얻은 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20세기에 들어서 멘델에게 유전 과학의 창시자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의 데이터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기 때문에 저명한 통계학자 로널드 피셔는 1936년에 멘델의 방법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 결과는 너무나 놀라웠다. 피셔는 힘겨운 연구 이외에 무언가가 개입된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실험 데이터 대부분이 멘델의 예상과 거의 일치하도록 조작되었다”라고 피셔는 썼다. 훗날의 유전학자들은 멘델이 최고의 사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데이터를 선별한 것이 분명하다고 보았다. “어쩌면 그는 완두콩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자신이 도달했던 유전에 관한 특정 관점에서 법칙들을 연역해냈을지도 모른다.”
사실 저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에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반대해왔으며, 과학조차도 그러한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역사, 그리고 모든 인간 사상의 역사는 무책임한 꿈, 고집, 그리고 오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과학은 오류가 체계적으로 비판되고 시정되는 유일한 인간 활동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과학에서는 우리가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고, 명확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보를 논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다른 분야에서는 변화가 있어도 진보는 드뭅니다. 거의 모든 이득은 손실로 상쇄되거나, 때로 이득보다 큰 손실이 생깁니다. 대부분의 다른 분야에서는 변화의 평가 방법조차 모릅니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진보의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과학 이론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이론보다 나은 것인지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를 '멘델이 조작했다'는 비난으로만 읽으면 [라]의 관점이 빠집니다. [라]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오류 여부보다 그것이 비판되고 시정되는 체계가 있다는 점입니다.